저녁의 꼴라쥬
백금같이 명징하던 해가 호박죽처럼 초라해지는 시간 왕자가 거지가 되고 늑대가 개가 되며 나약해지고, 깨지고, 부들거리며, 우울하고, 어둡고, 괴로워지며, 쥐어짜는 시간 사랑에 빠진 이들의 심장처럼 곤죽이 되고, 과부하가 걸린 노트북처럼 버벅이고, 방금 꺼진 형광등처럼 놀란 맥박들이 어리둥절하고, 조용한 확신으로 기쁨의 칸타타를 흘려보내던 정원이, 시끄럽도록 슬픈 혼혈아들의 뉴올리안즈 재즈 놀이터로 변한다 윤곽이 흐릿함에도 질료는 그대로 있고 각자가 차지한 공간도 침노당하지 않았으나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세계는 비로소 벌거벗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어둠 속으로 당신의 조각들을 넘겨주기 전에, 아직 점멸하는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처럼 의식과 기회가 남아 있을 때에. 윤곽선과 흐릿함이 동시에 살아 있는..
어제로부터 흘러들어온 사람들 강남 한복판에 멈춰버린 바람들그러나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아무데도 못간 새벽 시간대에 갇혀버린 순간 맥도날드에 맥모닝을 시키지만 이들이 먹는 것은 아침이라고는 할 수 없어 텅 빈 속에 우겨넣는 허쉬 브라운 새벽의 위장을 찔러대는 스프라이트미래가 깨어진 헤드라이트 같이 춤추면서 청년들은 강남에서 올나잇-어제의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긴박하게 전언하는 깜박임 어제의 사람들 사이에서 익사하지 말고 감긴 눈을 뜨고 말해-익사하지 말고 닫힌 입을 열어 말해-익사하지 말고 감긴 눈을 뜨고 말해 : 강남의 새벽은 우크라이나의 오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취한 청년들은 아침을 피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맥도날드에선 취한 이들이 맥모닝을 아프게 먹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어제로부터 흘러들..
어제로부터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 새벽은 어둠의 깨어짐 같은 것이다 어둠이 깨지면 술에서 깨어야 함을 직감하는 것이다 오늘의 아침은 침침한 별빛같아 보였지만 익사하지 않은 이들의 것이다 눈이 감길 때마다 다시 눈을 뜨는 그 치열한 점멸이 무언가를 긴박하게 전언하는 커서의 깜빡임처럼 어제의 사람들 사이에서 반짝인다 어제의 사람들 사이에서
천천히 말해도 돼 천천히 말해도 돼. 그렇게 오랫동안 너 자신이었던 사람보다 너는 더 나이가 많으니까, 바로 너 자신보다도 너는 더 나이가 많으니까, 그런데도 아직 부재가, 시가, 금이 무엇인지 너는 모르고 있잖아. 황톳빛 물이 거리에 넘치고 짧은 폭풍은 졸고 있는 평평한 도시를 흔들지. 모든 폭풍은 이별, 수백 명의 사진사가 머리 위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며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을 연장해. 죽음의 애도가 무엇인지 너는 알아 너무 급작스러운 절망이 심장의 리듬과 미래를 틀어막는 것, 민첩한 화폐가 돌고 도는 현대적인 가게,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너는 울었어. 너는 베네치아도 시에나도 보았지, 화폭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어리고 슬픈 마돈나들을, 보통 아가씨가 되어, 사육제에서 춤추고 싶어 하는 마돈나들을 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