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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9월 13일의 수기, home coming
나는 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나는 말테 브리게처럼 보는 법을 배우는 편이 아니다. 내 시선이 힘적인 것이 아닌 부드러운 어떤 것에 의해 풀려짐을 경험한 이후로부터, 시선의 변경이 인식론이 아니라 존재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야가 열리는 체험. 역설적으로 그러한 경험은 불안한 자기 존재에 대한 수용에서부터 개시된다. 스스로의 그러함이나 이러저러함에 대해 눈을 감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스탠스 자체가 존재의 허약함을 보여준다. 치달리는 처연함이 강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강함에 대한 사유가 힘과 의지의 층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흩어지는 시간을 끊임없이 끌어모으며 앞을 지향하지만 속절없이 다시 흩어짐을 경험하는 하이데거적 시간의 극복은 힘적인 용기와는 전혀 다른 편에서 기획되어야..
오랑쥬 껍질 씹기
2019. 9. 14. 0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