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하나님의 사랑은 불타고 있다 줄곧 불타는 것은 진실되다 나의 심령은 곧잘 구부러지는 마른 나무 가장 갈구하는 진실을 진실되지 않게 갈구하는 나의 심령은 태워지길 거부하는 가시덤불 우거진 공동의 묘지 그 불이 고모라를 태우기 전까지 수도원이 아니다
겨울이 깊고 별이 빛나는 밤 날이 찹다, 그래도 먼 데 있는 별이 다 보이고 가난한 동네는 별들이 만개한다
두려움이 먼저 사라져야 한다. 이 두려움은 율법에서 온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를 질식시키고 모든 아름다운 가능성도 함께 박탈시킨다.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두려움을 피해 숨으려 한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며 오히려 로마서 7장의 말씀처럼 죄 아래 팔리는 것을 본다. 무엇이 죄인지를 알게 되면 더더욱 그 죄를 피하면서도 그 죄 아래 팔리게 되는 모순의 존재가 인간이다. 로마서 8장의 대전환처럼 우리에게는 힘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항복하는 것이 생명을 향한 열쇠가 되어준다. 항복은 7장까지의 흐름처럼 내가 '어느 정도' 죄인이 아니라 '뼛 속까지 더러운' 죄인이며 그 모든 실행되지 않은 죄가 이미 가능태로서 내 안에 죄다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미 살인이 내 안에..
어제,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때부턴가 저에게도 사순절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사순절, 하면 우리가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이며 고난입니다. 오늘 성경 로마서 15:8에서 말하듯 예수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할례의 추종자라는 말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에 순종하셨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율법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를 힘입어서, 우리는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새 사람을 입게 되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면 우리에게는 어떤 긴장의식이 생겨납니다. 고난. 에서 ..
우리는 죄를 이기고 싶어서, 의지를 사용한 나머지 경직이 될 때가 있다. 이때에 사용한 의지는 데이비드 베너가 지적하듯, "사랑을 앞선 의지"이며, 내 마음을 질식시키는 의지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또한 위험의 도랑을 본다. 우리가 갈망이라고 말하는 것이, 제랄드 메이가 말한 것처럼 "정화된" 갈망이 아니라면, 갈망만을 주장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주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주장한다는 것은, 바울이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서 표현하듯이, "내 뜻대로 되고자 하는 기대"이다. 내 뜻대로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내 뜻대로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바램은 기대이다. 우리는 기대가 아니라 희망을 가져야 한다. 희망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풀어주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풀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