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갈라디아서 5:16-24 성령을 따라 산책하십시오. 여러분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저는 매우 좋아합니다. 저는 찬양을 들으며 걷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찬양을 부르다가 감동이 많이 오면 버스를 타지 않고 집으로 걸어올 때가 자주 있습니다. 물론 세 정거장 거리밖에 되지 않는데요. 오면서 나무들을 보고, 별들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또 저희 집 앞에는 중랑천이 있어서 다리를 건너면서 강을 보기도 하고,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고, 바람을 쐬면서 천천히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때쯤 되면 집에서 문자가 옵니다. ‘도착할 때가 됐는데 안오고 어디에요?’ 날씨가 추운 겨울임에도, 저는 여전히 산책을 하며 집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별히 찬양을 즐겁게 하면서 오면, 추운 것도 어느 정도 ..
"성령을 따라 행한다"라는 것이 단순하게 그때그때 즉흥적인 흐름에 맡긴다는 뜻이 된다면 이 또한 반쪽짜리 진리가 된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부인하면서 그 다음 스텝을 어느 방향으로 내딛어야 하는지에 대해 주도면밀해야 함을, 오히려 그 근신과 절제에 대해서 민감한 계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기 원한다면 나의 정욕과 탐심은 십자가에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 안에서 우리는 교모하게 획책을 꾀하는데, 이것은 무의식의 선상에서 이루어지며,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수로 시작하였다가 자꾸만 스스로의 의로 변질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자꾸만 못을 빼고 내려오는 것은 이러한 ..
하나님, 내 영혼이 깊은 어둠 속의 쥐처럼 웅크리고 떨고 있습니다 불안이 몰려오고, 두렵고, 슬프고, 스스로가 약한 갈대임을 봅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요동하고, 1분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나라는 존재는 왜 이다지도 허약한 것일까요, 왜 이다지도 여린 것일까요 그러나 사랑하는 주님, 이 밤이 깊어질수록 주님을 향한 제 갈망은 더욱 강렬해집니다 당신을 사랑하려는 제 열망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제가 약할수록 저는 당신을 아니, 당신만을 붙들고 놓지 않을 것입니다 자, 어둠이 나를 둘러싸고 내 영혼이 깊은 중에 쥐처럼 찍찍거릴지언정 당신은 나를 놓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환난아 오너라, 사망아 오너라, 고독아 오너라, 상실아 오너라 너희는 내가 더욱 주님에게 발버둥치며 달음질하게 할 뿐이다 밤이 되면 사물..
내가 어떤 선함을 행하고 난 뒤에 전에라면 외롭다고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왜냐면 내 의지로 내 자아를 죽이려 했으니까. 모든 사람은 위로를 필요로 하고 용납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나도 그러하다. 그러나 입만 벌리고 있어서는 누군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내 쪽에서 찾아가고 위로하고 안아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쯤에서 자아의 질문이 시작될 것이다. 만약 그대가 자신의 의지로 이 선하고 의로운 일을 행했다면: 나는 누가 위로할 것인가? 그렇다면 누가 나를 위로할 것인가? 내가 사람들의 연약을 품을 때, 나는 강해야 하는 것인가? 나의 이 연약은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굴 속으로 들어가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나여, 자신의 의지로 자아를 죽이며 이러한 일을 ..
키예프였다. 마리앤을 만난 것은. 마리앤은 강가를 보며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대화 상대를 들뜬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다. 마리앤만큼은 건너편의 조용한 풍광을 보며 무언가를 수첩에 적고 있었다. 나는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양이처럼 무언가를 끄적이기만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옆에 서서 강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니?' 마리앤이 말을 건넸다. 딱히 말을 걸려고 그 옆에 서 있던 것은 아니였다. 그저, 그녀로 하여금 잠든 사람의 머리칼처럼 의식을 조용하게 만드는 풍광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어쨋든 그녀는 저 강가에서 주는 생각을 가지고 수첩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고, 나는 그녀가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강 건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