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217)
저녁의 꼴라쥬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라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
나는 하나님이 참 좋다. 내가 각을 떠서 드리면, 그분은 새 것으로 바꾸어서 내게 주신다. 사실 내 삶은 이런 진자운동의 반복이다. 기도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현상들에 부딪혀 피범벅이 되고, 연약함 중에 '나는 물안개와 같습니다. 나를 붙드소서'라고 기도한다. 음, 신앙이 (얼핏 보기에) 컨디션이 좋을 때는 차가 잘 나가는데, 정말 엉망이 될 때가 있다. 그때야말로 내가 가장 형식적으로 되거나 두 손 놓고 퍼지는 시간이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다' 이 문장을 진실된 사랑으로 읽다가도, 그런 일방적인 사랑을 이용하는 내가 정말 싫어졌었다. 당신은 나를 진실되게 사랑하는데, 나는 받고만 앉아서 크게 사랑하는 것을 그만둔다니. 바울은 '나는 매일 죽노라'라고 고백한다. 나에게는 사실 편지의 이..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기도를 하고 능력을 받으면 꿈에서 원수를 이기기도 하고, 기도가 부족하면 원수에게 기가 눌리는 그런 꿈을 꾼다. 꿈에서 내가 날아다니고 있다면 나는 그걸 영적 상태가 꽤 좋은 것으로 해석해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 꿈은 좀 달랐다. 강도가 버스에 들이닥쳐서 처음엔 두려워하다가 내가 능력이 있는 것을 깨닫고 그 능력으로 날면서 강도들을 다 지구 밖으로 던져버렸다. 보통은 이렇게 기분좋게 끝나는데, 박사(나는 꿈에서 그를 박사라고 불렀다)같이 생긴 이가 버스에 들어왔고 나는 그와 겨루었지만 승부가 나질 않았다. 압도당하지는 않지만 이길수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 도시(그는 버스를 도시라 불렀다)를 멸망시켜야 하니 여기서 나가라고 했다. 나는 그 버스에서 나왔고 능력이 약..
한국에 존경하는 목사님 한분이 당신이 생각하기에 영원은 하나님 안에서 보낸 공동체적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오늘 기도를 하면서 깨닫게 하신 통찰 하나는, 내가 정직함과 거룩함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전적으로 새로운 시간이 형성되어간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정직한 사람은 믿는다고 고백을 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믿는 "새로운 현실성"과 여전히 변하지 않는 "옛 현실성"이 충돌할 때에 끊임없이 분투하고 투쟁한다. 이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늘 권면하였다. 믿음은 말에 있지 않고 그의 삶에 있다.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내가 분투하는만..
주여, 저는 그동안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기도 하고, 치고 오르기도 했습니다. 차오르기도 하고 기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당신은 그러한 나를 통제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자유는 상황 가운데 속박되거나 유폐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들을 넘어서고 솟아오르는 직선적인 운동에 가깝습니다. (저는 누군가 저에게 직선적인 영성의 힘을 가졌다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나의 육신이 편안하고 넓은 길로 가려고 할 때에, 나는 내 영이 광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 나를 광야로 부르실 때 기쁨으로 나아가리라 ' 그 노래는 자기 전에도 울리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도 울렸습니다. 내가 그릇된 생각으로 행동할 때에도 울렸습니다. 당신은 복종이 아니라 사랑의 순종의 자유를..
오늘의 나는 누구입니까? 어제 나는 당신과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단단하게 무장된 마음으로 당신 앞에 나아갈 때, 왜 당신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울음을 꺼내놓는 것입니깍? 내 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울음이 있길래, 나조차도 마개로 봉해놓은 그 깊고 깊은 굴의 여로를, 당신은 왜 오늘도 여전히 탐색하길 원하십니까? 내 안에 한번에 들어오셔서 헤집지도 않으시고, 나의 굴 밖에서 그다지도 다소곳하게, 묵묵히 서계신 것입니까? 주여, 그 주님 앞에서 오늘도 나는 나의 무장된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당신 앞에는 내 맨 얼굴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당신은 말의 힘이 억센 것이나, 용사의 창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은 눈물과 콧물로 바닥을 투명하게 칠하는 나의 투명한 영혼..
이전에는 모임 속에서 늘 무언가 웃겨야 한다는 강박 아닌 충동이 있었나보다. 십년도 더 전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지인이 나에게 '웃긴 이야기를 꼭 하려 할 필요 없다'라고 조언해주었다. 재밌는 것은 더이상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못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모임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모임은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지속되었었는데, 당시의 나에게는 그 한달이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지인이 참 고맙다. 있는 모습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내가 유머와 거룩함의 균형을 깨닫게 되었을까? 나에게는 그 한달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지만, 그 기간은 나에게 필요한 기간이었다. 그 이후로, 언제 입을 열어야 하고, 언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생긴듯 하다. 반대로, 어떤 ..
벌써 봄이다. 강아지처럼, 또는 두렴없는 어린이처럼 봄은 나에게 성큼, 다가와 품에 안긴다. 봄에 대한 기다림은 참 길었는데, 봄이 성큼, 다가오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벙벙하기도 하다. 도서관 홀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그들은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아 시간이 정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시가 일어나기도 한다.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저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삶의 습관으로 견실히 자리잡힌 것이리라. 바이마르에 이사오고 난 후에 같은 도서관, 같은 산책, 같은 연구의 리듬이 반복될수록 단정한 만족감을 느낀다.도서관에는 내가 사랑하는 드가의 화집에서부터 존경해 마지않는 후설의 저작까지 적당히 빼곡하게 꽂혀 있다. 홀에 앉으면 나의 배후를 제외한 ..
"여러분은 이 세대에 순응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의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스스로를 변화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무엇이 하나님의 의도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선함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온전함인지 판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히스기야의 타락은 풍성함에서 비롯되었다. 풍성함은 히스기야에게 축복이 아니라 독이 되었다. 삶에서 스스로 허리띠를 매지 않을때, 온갖 세상의 것이 흘러들어와 그의 정신을 혼탁하게 한다. 그래서 로마서는 „정신"을 새롭게 하라고 한다. 이성은 우리 삶의 키와도 같다. 언어와 의미가 거하는 곳이 우리 삶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방향타를 바르게 하는 자는 생각과 혀를 통제하는 자이다. 지금의 세대는 건전한 이성보다는, 풍성한 감..
자격없음 때문에 버려짐의 경험을 한 아이는 커서도 그러한 문법에 갇혀 있을 수 있다. 그러한 문법으로 듣고, 그러한 문법으로 행동한다, 자기도 모르게.독일에 와서 역설적으로 경험하는 공간감 하나는, 아무리 느려도 괜찮다는 저편에서 들려오는 충만한 말과, 느리지만 정직하게 벽돌 한 장씩은 쌓아올릴 수 있다는 힘의 부여empowerment이다. 벽돌 한 장은 쌓을 수 있다. 이제 나는 예수의 가벼운 멍에로 새롭게, 다시금 돌아온다. 나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으시는 주님, 그리고 그 연약한 자와 한 걸음씩을 '산책'하고자 하는 주님. 산책은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고 뒤로 갈 때도, 에둘러 갈 때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올 때도 있다. 그러나 산책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으며, 참으로 도구화되어지지 않는 여가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