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217)
저녁의 꼴라쥬
기도를 하다 문득 하나님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왕의 자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바다 속에 있는 것이나 하나님은 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자유와 권세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보라. 그는 모든 것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 누리는 것을 포기하고 철저히 그 권세와 자유를 남을 섬기는 데에 사용했다. 권세가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 권세 때문에, 자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자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 아들과 청지기는 하나이다. 깨끗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다. 이 정직함을 회복하는 순간 사람에게는 느부갓네살이 총명을 다시 회복하듯 하나님의 영이 다시 부..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세계관, 또는 스스로의 준칙 정도라고 생각해두자.그런데 '이래야만 한다'가 점차 굳어지게 되는 것은 인간의 비극적인 습성인 듯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래야만 함' 때문에 부딪히거나 서로를 회피하게 된다. 그야말로 스스로의 준칙으로서의 세계관이 마치 법칙이 되는 양 행동하고자 하는 스핀이 너무도 자주 걸리는 것이다. 나 자신도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을 판단하거나 스스로를 옭아맬 때가 많다. 사실 그런데 그러한 것에 의해서 막다른 길까지 내몰리고 난 다음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이러해야만 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없음에도 스스로가 만든 것이 돌처럼 딱딱하게 경화되기 전까지 마치 그러한 것이 있는 양 그 안에서 존재하고 ..
로마서 4:13-25“영점(Zero point)으로부터의 부활” (1) “건너오라” 예수님의 음성이 캄캄한 밤, 호수 위에 들려왔습니다. 한 남자는 망설임 없이 그분의 음성에 의지해서, 배 밖으로 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내딛은 발 밑에는 일렁이는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마치 단단한 젤리 위를 걷는 것처럼 물 위를 늠름하게 예수님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밤이 어둡고 캄캄해서 하늘과 호수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런 것은 남자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 있던 제자들은 그 남자를 대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2) 며칠 뒤, 황제 가이사만을 숭배하는 도시인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제자들은 대답했습니다..
시편 4편“Sola!” (도입부) 오늘은 종교개혁기념 주일입니다. 여러분, 마틴 루터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지금의 기독교 교회가 있기 전에, 16세기까지 모든 교회는 동방의 정교회와 서방의 가톨릭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중동아시아 지역에는 동방 정교회가 있었고, 유럽의 지역에는 가톨릭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톨릭 교회에서 죄를 사하는 데에 있어서 면죄부라는 것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헌금을 하는 사람에게 죄를 사해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고, 죄를 짓기 때문에 면죄부를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면죄부를 판매한 이유인데요. 당시 가톨릭의 재정 상황이 안좋고, 교회 건축이 필요한 상황이라서 사실은 면죄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또 가톨릭은 예수님의 ..
시편 42편“내 영혼아!” 교리: 신론주제: 고난 가운데에서 우리의 기쁨의 소망은 하나님만이 되심을 다시 붙잡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쁨이 되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찾자.이미지: 행복과 기쁨미션: 아침 묵상 (도입부) 우리는 우리의 상황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게 힘들게 돌아갈 때 우리의 약점이 더 많이, 쉽게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감당할 능력이 거의 없고, 상황은 갈수록 거센 파도처럼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 폭풍우와 같은 상황들 앞에 우리의 모습은 강하고 큰 나무가 아니라, 약하디 약한 갈대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힘겨운 상황들 가운데에서, 버티기도 바쁜데, 우리는 우리의 약점들이 더 많이 드러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이 시험과 고난 가운데에서, 우리의 마음은 자꾸 낙심되..
몰트만은 이 책, 을 통해 균형잡힌 종말론적 신앙을 제시한다. 특히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 발생한 수없이 많은 이단과 사이비 단체가 있으며, 비단 이단이 아니더라도 한국교회 안에서 종말론에 대해서 목회자가 잘못된 신학을 가지고 선포하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개개인의 현실을 도피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을 한 달 안에 읽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있어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몰트만의 책은 그리 읽기 쉬운 책은 아니며 분량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몰트만의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의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참신한 신학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굉장히 균형잡힌 신학자라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이고 동시에 상당히 넓은 신학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다. 진리의 영은 자유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자유 가운데서 신비롭게도, "자발적으로" 우리는 희생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누구도 십자가를 강압적으로 메고 갈 수 없다. 반대로 어느 그리스도인도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다. 가장 불쌍한 것은 이 가운데 끼어 탄식하는 이들이다. 누구도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못한다. 사람이야말로 이 자발성을 질식시키는 데에 선수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이에게는 한병철의 표현대로 '머뭇거림'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머뭇거림의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락하신 위대한 기다림의 시간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시간이다. 너는 참으로 결정하기 위해서 머뭇거린다. 네 안에서 진실된 것이 만들어지기까지 기다리는 지도 모른다. 그..
예수께서 실패한 베드로에게, 번아웃된 베드로에게 회복시키신 것은 사랑이었다. 그는 아마도 충성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랑을 먼저 회복시키신다. 베드로의 연약과 상관없이 (더 강함이 더 사랑함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베드로의 마음 가운데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을 예수님은 일깨우셨다. 그 사랑은 베드로의 안에 있었다. 충성의 실패와 함께 그 사랑은 어두컴컴한 동굴 가운데로 숨어버렸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과 자격을 동일한 위치에 놓으려 하는 경향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먼저 자격없는 자를 그 위치에서부터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포옹해오신다. 그리고 그에게 애초에 힘이 없었음을 주지시킨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이 없음으로, 능력이 없음으로, 의지가 약함으로 우리가 그..
아이를 막 대하면 그는 거칠어진다. 그리고 모든 감각이 러프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를 조심스럽게 대하면 그의 모든 감각은 섬세해진다. 하나님은 자녀를 막 대하지 않는다. 쓸 것과 채울 것을 막 던져주는 분이 아니다. 그는 절대 그의 자녀를 방기한 적이 없다. 그는 모든 단호함 가운데로 그의 자녀를 부드럽게 이끌어가신다. 가장 나쁜 자녀교육은 그를 애매모호한 미래 가운데로 단호하게 이끄는 것이다. 목표는 분명하고 인도는 부드럽고 가르침은 단호해야 한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과 언어 발화에서 구강의 후음을 미묘하게 분별해간다는 것, 문체에 있어서 온갖 부드러운 시적이고 단단한 산문적인 것을 소화해간다는 것, 수많은 도구 사용법을 익혀간다는 것, 방종의 먼지를 털고 단정한 자유로 나아간다는 것,..
우리는 언제나 개방성에 대한 요청과 도전을 받는다. 단지 외부와 내부의 이분법적 도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육체성이라는 것을 이야기할때도 이제는 단순히 육체를 논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라는 말은 순진한 이분법이다. 영혼 또한 악할 수 있다. 마음의 육체성이라는 표현을 기억해볼 때, 우리는 육체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낡아져가는 어떤 것, 유한한 피조물성, 자기반복을 추구하는 내적 폐쇄성이 육체성이라고 정의내려보자. (이것도 불충분하겠지만) 오히려 육체성과 반대되는 것이 육체의 내부에서 생겨난다. 단순히 외부로부터, 위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이면서도 내부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