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11월 10일 목 저녁기도회 찬송: 455장 통 507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말씀: 고린도후서 1:1-10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서 꼭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인사말을 적어넣습니다. 독일에서는 Wie geht's?라고 물으면 반드시 그에 대한 답변과 Und dir?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영어권에 속한 사람들은 How are you?라고 묻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지 않고 지나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도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뒤에 물음표를 붙이지 않습니다. 안녕하십니까?는 원래 물음이지만 어느새 안부를 묻는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인사의 기능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사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묻는 안부..
습관을 따라 제 때에 일어나고, 기도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 가는 일은 성실하지만 열심을 내는 일은 아니다. 나는 열심으로 뜨거워지려 할 때면 자신의 시선 또한 가파라지지는 않는지 우려하게 된다. 먼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걷는 발걸음의 의미를 또한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친 열심은 먼 길을 가게 할 수 없다. 십수년이 지난 낡은 블로그에 습관을 따라 글을 쓰는 것은 큰 위안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를 바라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사람들을 의식하고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녹음실에서 연주하는 것을 원했던 연주자가 나는 공감이 간다. 관객은 연주자의 손을 보지만 청중은 연주자가 만드는 것을 감상한다. 말을 하고..
10월 7일 금 새벽기도회 찬송 545 통 344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말씀 고린도전서 16장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성도로서 어쩌면 가장 철저하게 지키기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헌금일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헌금을 하는 행위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아끼는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또한, 교회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재정을 나누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명하는 헌금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예루살렘은 헌금으로 연결되어집니다. 무슨 말이냐면, 복음이라고 하는 영적 축복을 받은 이방인인 고린도 교인들이, 그 영적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교회..
10월 6일 목 새벽기도회 찬송 350 통 393 우리들이 싸울 것은 말씀: 고린도전서 15장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도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인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도 성경에 쓰여진 대로 이루어진 일인 것처럼, 예수께서 다시 사신 것도 성경에 쓰여진 대로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먼저 베드로와 열두 제자에게 보이시고 가장 마지막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가 기도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에 이 15장을 가지고 했는데, 질문 하나를 했습니다. 바울은 왜 자기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표현했을까요? 그러자 어떤 형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육체를 가지고 나타나셨는데,..
10월 5일 수 새벽기도회 찬송: 211 통 346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말씀: 고린도전서 14장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3장의 1-3절에서는 방언과 천사의 소리를 말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러한 언급을 한 이유가 이제 14장에서 드러납니다. 당시의 고린도 교회에서는 교회 가운데에서 방언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전체의 모임에서도 방언으로 계속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어제 13장에서 했던 표현과 비슷한 표현을 다시 쓰는데, 14장 7절을 보면, 피리나 거문고가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않으면 그 소리가 피리인지 거문고인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합니다. 8절에서는 전쟁 나팔 비유를 듭니다. 나팔이 분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