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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화요일은 프랑스어 수업이 있는 날이다. 세 시간이나 되지만 시계를 한번도 보지 않는 그야말로 수행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다. (재즈댄스 수업 중에는 체육관에 걸린 시계를 중간중간 무지하게 보았었다, 드로잉 수업을 들을 때는 한번도 시계를 안보고 스케치북에 몰두했었고). 선생은 일부러 대형서점이 아닌 개인서점에 프랑스어 책을 주문해놓았다. 구글지도로 서점을 찾으니 사랑하는 지인의 가게 옆이다. 교재를 사서 기분 좋게 지인의 카페에 가서 플랫 화이트를 주문하고, 갓 구운 빵을 먹고, 해를 쬐며 거리를 걷는다. 광장 옆의 기독교 서점에 들어가 렘브란트 삽화가 들어간 성서를 구매했다. 프랑스어 반 친구들은 지난 주보다 몇 센치 정도 더 가까워져 있었다. 방심을 해서 단어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 모르는 동사가 ..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나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갈라놓게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허물이 있었고 나는 정의를 외치며 그 허물을 폭로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화가 나서 저마다 자기 방향으로 갈라졌다. 어쩌면 그게 내가 생각했던 정의였고, 율법이었던 듯 하다. 꿈 속에서 내가 가는 어디에나 사람들은 문제라는 것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드러내야 하는 어떤 것이라 생각했고, 한번도 그것을 고치지 못했다. 드러내야 할 때가 있고, 숨겨야 할 때가 있다. 분별력이라 하는 것은, 시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자신을 변환switch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태도변경의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이유는 꿈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강권하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오..
소위 신앙과 신학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때가 있다. 신학을 하고 나면 무지한 채로 머무를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부조리한 상황들을 만나면 머리 뿐만 아니라 가슴이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답은 하나다.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서.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와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진영에 서있다. 그러나 그 진영들의 굴곡진 것들 사이에 껴서 전체적 조망을 할수밖에 없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차라리 청년의 때에 나는 마음이 편했다. 그냥 한쪽에 서면, 무지한 채로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