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19/04/05 (2)
저녁의 꼴라쥬
아우구스티누스를 연구하면서 중세 시대 신학자/철학자들의 아우구스티누스 주해를 함께 보는데, 오늘 발견한 인상깊은 부분은 "흘러가는 시간은 비존재가 아니라 연약한 존재"라는 말이다. 봄에 피는 벚꽃을 보며 일본사람들은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함께 생각한다고 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잎들이 피자마자 땅에 떨어지는 것, 그 덧없는 아름다움이 일본사람들의 정서라고 나에게 일본인 교수님께서 말해주신 일이 있다. 그렇다면 봄이야말로 가장 덧없는 계절이 아닌가. 열매가 빨갛게 익는 뜨거운 여름도 아니고 원숙해지는 차분한 가을도 아닌것이 그저 피었다 지는 꽃들로만 가득한 이 계절의 의미는 도대체 무얼까. 엘리엇의 표현과는 달리 4월은 잔인한 계절이 아니다. 겨울과 달리 고통의 계절도 아니고, 그저 생소한 새 생명으로 가..
4시까지 연구를 하다가 머리 속에 부드러운 것이 다 고갈된 상태가 되어서 커피를 한잔 마시러 도서관을 나섰다. 커피를 다 마시고 건너편에 화랑이 눈에 띄었다. 유화 그림들이 차창 안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색이 있는 것들을 보면 이상하게 위로를 받는다. 나는 내 그림에 색을 칠한 적이 없다. 색감은 정서나 기분을 표현하는 것인데 나는 줄곧 스케치만 해왔었구나. 나의 고모는 화가였다. 고모가 마당 벽에 커다랗게 유화를 그렸을때, 그것을 보고 최초로 그림을 멋지다고 느꼈다. 당시의 나는 초등학생 아니면 중학생이었고, 고모는 정원사처럼 회색 벽을 초록 정원의 나무와 강으로 수놓았다. 내가 그림을 들고 가서 보완해야 할 부분을 물으면, 고모는 그냥 그대로가 좋다고 늘 말했다. 그냥 그대로가 좋다고. 카페 건너 화..